완벽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왜 틀린 판단을 내릴까요? 데카르트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실수의 원인을 넘어 자신의 철학 전체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오류는 인간의 이성이 부족해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이성으로 확인한 범위를 넘어 성급하게 판단할 때 발생합니다. 손전등이 비추지 않는 곳까지 보인다고 착각하며 발을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한 신이 인간을 속일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완전한 신은 인간을 고의로 속이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속임수는 부족함이나 결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므로 완전한 존재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판단 능력 자체가 잘못 만들어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오류를 만들어내는 고장 난 장치를 주었다는 설명은 데카르트의 신 개념과 충돌합니다.
따라서 오류의 원인은 신이나 인간의 개별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 그 능력들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성 또는 지성은 어떤 관념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이성이 어떤 대상을 명석하고 판명하게 파악하면 우리는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보가 부족하거나 개념이 흐릿하면 무엇이 참인지 분명하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세상 전체를 밝히는 태양이 아니라 한정된 부분만 비추는 손전등과 같습니다. 다만 알지 못하는 것 자체는 아직 오류가 아닙니다.
의지는 이성보다 넓게 작용한다
의지는 어떤 내용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능력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은 제한적이지만 의지는 매우 넓은 범위에서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 문제에 대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게 맞다” 또는 “틀렸다”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성이 보여준 자료는 몇 장뿐인데, 의지는 이미 사건 전체의 결론을 내려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정보보다 판결이 먼저 나오는 셈입니다.
오류는 의지가 이성을 앞지를 때 생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오류는 의지가 이성으로 분명하게 이해한 범위를 넘어설 때 발생합니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참이나 거짓을 단정하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멀리서 본 사람의 얼굴이 흐릿한데도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은 것이 곧 오류는 아닙니다. 불분명한 상태에서 특정 인물이라고 확정한 판단이 오류입니다.
따라서 오류는 인간에게 별도로 주어진 적극적인 능력이 아니라, 판단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결함 또는 결여에 가깝습니다.
오류를 피하려면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류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데카르트는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판단을 보류한다는 것은 생각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충분한 근거를 얻을 때까지 긍정이나 부정을 미루는 것입니다. 흐릿한 사진을 억지로 판별하지 않고 더 선명한 사진을 기다리는 태도와 같습니다.
정리하면 데카르트 철학에서 오류는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 자체가 나빠서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한된 이성이 아직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영역까지 의지가 판단을 확장할 때 생깁니다. 결국 오류를 피하는 핵심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단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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